人間失格 (인간실격) by 太宰治 (다자이 오사무)


伊藤潤二さんの漫画で「人間失格」を再び読んだ。そしてその直後、Audibleで朗読版を買って車を運転しながら再度この作品を聞いた。10年前に一回この小説を読んだことがあるが、その時にはこの作品を十分に理解できていなかったことを、今回この作品をそれこそ「新しい」方法で再び鑑賞してみて分かった。真の名作って、こんなものなんだろう。美しくて恐ろしい。率直で躊躇がない。誰もみようとしない部分を敢えて見せてしまう。知っても話そうとしないもの、または語る能力のない者のみが知ってきたものを、暴露してしまう。本当に迫力のある作品でありながら、繊細に作られた作品だ。「小説」というのが、単なる「面白い話」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この作品は証明してくれる。

이토준지의 만화로 '인간실격'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 직후, Audible에서 낭독판을 사서 차를 운전하는 동안 다시 이 작품을 들었다. 10년전에 한 번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있지만, 그 떄는 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느 것을 이번에 다시 정말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감상해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진정한 명작이란 이런 것이겠지. 아름다운 동시에 무섭다. 솔직하고 주저가 없다.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은 부분을 굳이 들추어 보여 준다. 알아도 말하려 하지 않는 것, 또는 말할 능력이 없는 사람만이 알아 왔던 것을 폭로해 버린다. 진정으로 박력 있는 작품이면서, 섬세하게 짜여진 작품이다. '소설'이란 것이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은 증명해 준다.

人間誰でも「闇」の部分を持っているはずだ。でも幸いなことに、その暗くて気味悪い「内面の何か」が表にでてその人を支配することになることは滅多にない。たまに我々はニュースなどで、「そうなってしまった」人たちの話を聞くことになるが、その度に我々は驚愕する一方、「なんでそうなってしまっただろう」と、疑問にも思ったりしますが、それと同時に「(できれば)もっと詳しい事情が知りたい」と微かな好奇心みたいなものを感じるのもの事実である。恐らくその罪悪感のある「好奇心」は、みんなの心の中に潜んでいる「闇」がチラッと、横顔をみせた瞬間に起こる妙な心理的作用ではないかと思う。

사람은 누구라도 '어둠'의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 어둡고 불길한 '내면의 무언가'가 겉으로 나와서 그 사람을 지배하는 일은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가끔 우리들은 뉴스 등을 통해 '그렇게 되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우리들은 경악하는 한편 '어쩌다 저렇게 된거지'라고 궁금해 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 (혹시 가능하면) 더 자세히 사정을 알고 싶다'라고 살짝 호기심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 죄악감이 느껴지는 '호기심'은 모두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어둠'이 살짝 옆모습을 드러낸 순간에 일어나는 묘한 심리작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この小説の主人公の大庭葉蔵をどう受け入れるかは、ただ個人の好みの問題ではないと思う。それは、その読者の価値観や社会理念の形成にも繋がる重要な問題になるのだ。大庭葉蔵を同情できるか、の問題ではない。このような人物が生まれてくるのを、個人として、そしてまた社会としてどう見るべきかを聞いているのである。果たして大庭葉蔵は不幸なまま放置されるほかはなかっただろうか。どうして大庭葉蔵は、悪魔である自分を隠そうとし、それほど酷く周りのすべての人々に怯えて生きていたのか。なぜ、自分に優しくしてくれた数少ない「女性」たちを破滅に追い込んだのか。大庭葉蔵は単純に人間の姿をした悪魔、お化けであるからこのようなものが人に迷惑をかけ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きちんと裁いて隔離してしまえば解決できる話なのか。またはこのような「人間失格」のものにも機会を与え、温かく受け入れてやり、彼の中にある悪魔性を抑制または減少させることを企図すべきなのか。

이 소설의 주인공 '오오바 요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단순히 개인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독자의 가치관과 사회이념 형성과도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오오바 요조를 동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인물이 태어나는 것을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오오바 요조는 단지 불행한 채로 방치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어째서 오오바 요조는 악마인 자신을 숨기려고 했으며, 그 정도로 심하게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겁을 내며 살았던 것일까. 왜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던 몇 안되는 '여성'들을 파멸로 몰아간 것일까. 오오바 요조는 단순히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 괴물이니까 이런 놈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도록 확실히 격리해 버리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이런 '인간 실격'인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고 따뜻하게 받아 들여서 그 안의 악마성을 억제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この深い質問にすぐ答えを求めるのは難しいが、太宰治は、この話で大庭葉蔵に親密に関わりながらも大庭の及ぼす悪影響から上手く逃れた人物たちを見せて、ー 意図したかしなかった分からないが ー、その質問の答えに関する貴重なヒントを読者に垣間見せている。その人物たちは「堀木」や「マダム」である。彼らは悪に堂々となることのできる「免疫力」を持つ大人たちである。大庭の感情や苦悩を間接体験しながら得る芸術的快感を楽しむのも素晴らしいが、この「堀木」や「マダム」をどのくらいまで理解できるようになるかが、今後自分の人生を生きていくうえで重要な話頭になってきそうな気がした。むしろ今この瞬間にこの作品に再会できたことに意味があるとするならば、このことにこそあるのではないかとも考える。

이런 깊은 질문에 당장 답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이 이야기에서 오오바 요조와 친밀하게 지내면서도 오오바가 미치는 악영향을 잘 피해간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 , 그 질문에 관한 귀중한 힌트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인물들은 바로 '호리키'와 '마담'이다. 그들은 '악'에 대해서도 당당히 대처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춘 어른들이다. 오오바의 감정과 고뇌를 간접체험 하면서 얻는 예술적 쾌감을 즐기는 것도 매우 좋지만, 이 '호리키'와 '마담'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가 앞으로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이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여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憂鬱な小説はあまり読みたくない最近だが、やはりこの小説は読んで楽しかった。漫画も立派だったし、聞いて鑑賞するのも素晴らしかった。このような名作を書いた芸術家の人生が、本人には楽しく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すごく悲しく感じた。

우울한 소설은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요즈음이지만, 역시 이 소설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만화도 진짜 훌륭했고, 듣는 것을 통해 감상하는 것도 진짜 좋았다. 이런 명작을 쓴 예술가의 인생이 본인에게는 즐겁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슬프게 느껴졌다.

10년전의 감상 링크


by 빛에대하여 | 2019/05/25 08:44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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