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by 장강명 기억에 남은 책


재미있다. 정말 간만에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소설책을 만났다.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꽉찬 재미가 있었다. 어릴 적 만화방에서 빌려 봤던 일본 만화책에서 느꼈던 재미를 오랜만에 맛봤다.

남의 정신을 조종해서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현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약자의 입장에서 짓눌리는 일상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상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나아가 항상 자신의 의지를 마음껏 관철시키는 강자와 항상 당하고 지배받기만 하는 약자가 단순히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정말 어떠한 '능력'의 유무의 차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과 보유하지 못한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고, 능력의 보유자는 예외없이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능력은 일종의 돌연변이처럼 발생하여, 그 능력을 가진 자와 평범한 인간이 확연히 구분된다면?

이 소설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 흡인력있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다양한 캐릭터와 빠르고 경쾌한 전개에 아주 쉽게 작가의 세계관에 몰입이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순간에도 생각이 나고, 계속 끝이 궁금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다. 나 또한 이렇게 스토리 만으로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 속의 나는 항상 남과의 관계에서 내 의견을 포기하는 쪽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를 먹으며, 또 주변 사람에게 배우면서 조금씩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내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경우에서는 쉽게 말문이 막히고 내 의견을 굽히고 타협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런 부분이었다. 가뜩이나 성격상 강하게 자기 주장을 잘 못하는데, 말발까지 딸려서 그냥 밀려 버리고 마는 경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에 제일 중요한 건 자기의 의사와 이익을 분명하고 또 효과적으로 주장하는 능력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워 나가는 것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내가 가장 힘들게 해 나갔던 일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늘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느꼈던 것은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늘 타인의 희생을 적든 크든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평범하고 약한 우리들은 결국,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자신을 배려해 주는 사람에게만 당당하며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만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며 여기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묘한 죄책감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 한 것 처럼, 호모 도미난스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상대방이 만만하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많이 사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좋은 컨텐트를 소비했을 때 드는 뿌듯한 만족감과 뭔가 치유되는 느낌이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오롯이 들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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