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by 천명관 기억에 남은 책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 '고래'는 세 권이나 있었다. 한 권을 중고 서점에 팔았기에 지금은 두 권이지만.... 약 1년전 쯤 친척분으로부터 천명관 작가의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추천 받아 힘들고 지쳤던 주말 저녁 지친 마음을 달래며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인상깊게 남지는 않았기에 그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하지 않았다. 단편 소설들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역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국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언제나 픽션으로 도망치는 내 습관 탓이다. 영어나 일본어 소설보다도, 역시 모국어인 한국어로 씌여진 한국 소설이 이럴 때엔 제격이다. 물론 번역본을 손에 잡아도 좋겠지만, 여전히 그러긴 싫다. 적어도 영어와 일본어에 대해서는 아직 원어로 읽는다는 원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천명관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소설이다. 예전 당산역의 한 서점 매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이제야 읽어 보게 되었다. 고래와 같은 명작의 기운은 없었지만, 그래도 주말 밤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고, 일요일 아침 일찍눈 뜬 직후의 조용한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는 즐거운 소설이었다.

인천의 뒷골목 건달들과 그 주변 양아치들, 그리고 지방의 조폭들이 총 출동하는 이 소설은 한 편의 재미있는 한국 영화를 보는 기분을 주었다. 어떤 면에서는 장강명의 소설과도 비슷했다. 당장 영화화 되어도 좋을 신나는 소재와 그 이야기를 꼬임 없이 절묘하게 풀어가는 솜씨가 좋았다. 속도감있는 재미 (단, 유치해지지 않는데 매우 주의한 것 같다)에 치중하고, 깊은 내용은 일부러 배제하려는 것이 요즘 시대의 소설 특징인가 싶었다. 아마 영화화를 전제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이 작품에서는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야기 자체를 오밀 조밀 절묘하게 구성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것, -즉 소위 '구라'로서의 최고급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 일까? 문장이나 캐릭터는 정말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컴퓨터로 쉽게 쉽게 쓴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아닌게 아니라 좀 찾아보니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를 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아마 분명히 연재의 방식이 이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천명관의 '고래'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번 작품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진부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작가들도 예술가(즉, 아티스트)라기보다는 더 큰 의미에서 '크리에이터'를 지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작에 방점을 두는 크리에이터는 그 안에 복잡하고 미묘하고 의도적인 예술을 집어 넣는 데에 더 이상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찌기 일본의 대중소설에서 나타난 이 경향이 한국 문단에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예술적인 소설을 쓰려고 하는 작가들이야 많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해도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독자를 확보하기도 무척 어려울 것이다. 

다른 네티즌 리뷰를 살펴 보아도, 이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솔직히 그저 고급스러운 이야기 = 구라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많은 듯 하다. 블로그를 잠시 쉬었을 때 읽어서 기록을 남기지 못했던 명작 '고래'와 달리, 그리고 이 책을 잡기 전에 읽었지만 내 기준에는 탈락하여 리뷰가 남지 못한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달리,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리뷰가 남게 되는 것이 참 재미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이렇게 우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있으면 같은 작가의 '고령화가족'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최근에는 영화화 된 소설들을 중점적으로 찾아 읽고 있다. 언젠가 나 또한 영화화 되는 작품을 하나 써 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픽션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좋은 이야기 속으로 잠시 나갔다 오는 것 만으로도 다시 힘을 얻고 새롭게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이 그래서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치유의 힘이 오래 남는 작품을 쓰고 싶다. 좋은 이야기의 영향이 오래 미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참고가 되는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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