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by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천병희 옮김)

그리스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관련하여 로마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공부해야 하는 범위야 끝이 없겠지만,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건 로마의 '스토아 학파'였다.

어렸을 적엔 금욕주의의 대명사인 스토아 학파를 농담의 소재로 줄곧 써먹곤 했지만, 조금씩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진정한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는 다소의 금욕과 자제, 그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적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이 '명상록'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막연하게 그냥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책 이야기 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회창씨라면 아마 이 책을 진심으로 좋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학파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더 높은 수준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부질없는 욕정과 어리석음에 휘둘리며 충분히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다른사람이 만들어 놓은 허구적인 인생을 연기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오직 변하지 않을 한가지 진실, 곧 인생은 유한하며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짧은 인생을 최대한 성찰적이고 뜻깊게 살기를 요구한다. 더 나은 것, 더 사람다운 것을 향하여, 한 순간 한 순간을 진심으로 성찰하고 음미하는 삶의 자세가 스토아 학파가 추구하는 바이다.  

로마의 황제였던 저자는,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권력과 출중한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있었지만, 철저히 스토아 학파의 이상을 구현하는 삶을 산다. 욕망을 부풀리기보다, 주어진 것에 더욱 감사하고, 소박함 속에서 미(美)를 찾으며 아름다운 인간의 모범을 살아 나간다. 명상록은 그러한 저자의 삶에서 깨닫고 실천해 나간 내용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술하여 이 책을 남겼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금욕주의도 또 엘리트주의적인 오만함이 거슬리기도 하고,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나누고 열등한 것은 우월한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등 다소 귀족주의적인 견해도 보이지만, 그러한 점이 이 책의 가치를 훼손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점까지 포함하여 인간이 현실 속에서 더욱 고귀하고 인간 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욱 생생하게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아울러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서구의 합리주의와 성숙한 시민의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보다 그리스/로마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결국 우리가 지금 아는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종교가 유럽에 들어 온 후 그리스/로마의 철학적 전통의 영향을 받아 재해석되어 '서구화 된' 버전이라는 것이 아닐까. 서구의 정신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은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아닌 그리스/로마 철학 전통이 아닌가 싶다. 

확실히 스토아 학파의 철학은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회 지도층 및 귀족을 위한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것이다. 그러나 결국 철학을 필요로 하는 계층은 사회 지배층일 것이고, 철학은 그들에게 바른 지침을 제공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토아 철학은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측면 또한 가지고 있다. 차갑고 엄숙한 철학이며, 고귀함을 숭상하는 철학이다. 바로 그런 점이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살면서 무조건적인 엄숙함이나 형식주의,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고 매력 없게 만드는지 알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것을 실천해 나가는 진지한 마음 그 자체에는 계속 끌리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내 나름대로 착하게 살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또 종교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적절하게 오늘을 희생하고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현재의 판단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후회할 일인지를 알 수 있게 되겠지. 계속 고민도 되겠지만, 일단 오늘 하루를 스토익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 보아야 하겠다.


by 빛에대하여 | 2017/07/17 11:54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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