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by 플라톤 (정암학당 강철웅 번역) 기억에 남은 책


우리말로 읽는 고전읽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플라톤 읽기에 도전해 보았다. 마침 정암학당이라는 훌륭한 단체에서 플라톤 전집 번역에 착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나온 책을 한 권 구입해 보았다.

정암학당 링크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를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사형을 받았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그 재판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고 그 과정에서 변호를 넘어서 스스로의 철학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아테네는, 전쟁과 내부 쟁정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황이었고, 더 이상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회를 유지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희생양을 요구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러한 때에 불순 종자로 몰려 처형을 당한 것이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그를 재판정에 세운 사람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자기가 추구하는 정의로움과 경견함을 끝까지 완전하게 추구하고자 했고, 현실에 타협하여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그에게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의 기개와 정신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서양철학자에게는 유학자들이나 선비, 사무라이들에게 보이는 정신주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목숨마저 버리는 철학자의 전통이 사실은 서구에도 유구히 살아 있었음을 확인하고 정말 놀랐다. 서구의 정신세계는 정말 동양의 전통에 비해 얄팍하고 피상적인 것일까? 나는 점차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변명'을 통해, 모두가 한가지만을 옳다고 할 때,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인지, 단순한 맹종은 아닌지 따져 보자고 하는 이성과 용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즉 '무지의 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시인과 장인들이 그들의 시짓는 재주, 그들의 물건 만드는 재주 하나를 가지고, 그들이 모르는 것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습을 예로 들면서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혹은 '모르는 것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설명한다. 소크라테스의 지적은 정말로 우리 사회에 되살려 새겨야 할 충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하면 스스로가 지식인이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고 완전히 믿어버린다. 그리고, 인터넷과 서적등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현 상황에서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단정적으로 결정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건방진 우리들의 상사, 바보같기만 한 우리들의 리더 (정치인 등)의 모습 속에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믿는 개인들이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지를 늘상 확인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는 데에는 인색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나는 너무나 무섭다.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언제나 스스로에 쉽게 왜곡되어 있을 수 있고, 나의 감정과 부족한 정보에 의해 늘 편협하고 감정적으로 격정적이기만 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정말 두렵다. 소크라테스는 이 책에서,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 또한, 우리가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대상 (즉,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덧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것인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렇다. 심지어 우리가 생물로서 당연히 두렵고 피해야 한다고 하는 죽음조차,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의심처럼, 사실은 가장 좋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피하고 두려워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 당장 내가 죽음을 예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죽어야만 사는' 기독교의 신앙의 정신처럼 의외로 우리는 합리적이고 깨끗한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또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그려 놓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정한 것들을 따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상 반성해 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우리를 부유하게 이끌어 줄 것인지, 우리 사회를 더욱 유복하고 부강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즉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단순히 성공과 부를 위한 재료로만 쓸 것인가 혹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봄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지적은 정말로 뜻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암학당에서 번역한 다른 플라톤의 책을 읽으며 계속 공부해 나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읽는 내내 아름답고 유려한 한국어 문장과, 공들여 만들어진 책의 구성과 내용, 그리고 부록 내용에 있어서도 깊은 감명과 기쁨을 느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의 미래를 이 책의 만듦새와 번역자 강철웅 선생님의 아름답고 정확하며 유머러스한 문장에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책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고, 나 또한 이 땅에 더욱 잘 기여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노력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글

  • 지성의 전당 2018/09/03 22:31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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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천 년간 어느 누구도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과 질문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에게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반드시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의문은, ‘신’을 추측하고 상상하여 존재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에 대해서 묻고 있다면, 저의 견해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신’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존재’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에게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반드시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시작되기 이전에 ‘아무것도 아닌 무엇’, 즉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알 수 없는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은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서, 존재하지만은 않습니다.


    www.uec20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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