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by 한병철 기억에 남은 책

 간만에 휴가로 다녀온 한국은 비관론과 우울로 가득 차 있었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상황이 그렇게 나빠진 것인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달라져 있는 느낌이다. 어렵다고는 해도 모두가 예전에 비해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던 2000년대 초반과, 소위 '헬조선'이니, '수저론''이니, '노오력'과 같은 말이 흔해진 2010년대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 

 휴가 기간인데다가, 간만에 회사 일이 조금 덜 바빠서 시간이 난 지금, 습관처럼 펼쳐든 외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오늘도 나 또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순수하게 예쁜 모습으로 보답해 주리라는 순수한 기대는 이미 버린 지 오래이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귀로 오디오북을 듣거나,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해 본다. 그마저도 지치면 운동을 조금 하거나, 사람들에게 SNS로 메시지를 날린다.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쓸 때에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즐겁고 보람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내 스스로가 질리곤 했다. 그리고 남는 것은 늘, 우울함과 불안함. 나는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되어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조금씩 조금씩 희미해 져 가는 많은 것들을 그리워 하기만 했다.

 이 책은,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김정운 박사의 '에디톨로지(링크)'를 읽으며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씌여진 한국어판 서문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후 독일에 건너가 철학 박사가 된 저자 한병철 박사가 독일어로 쓴 이 책은, 타자를 배척하고 구분 짓던 면역학적 사회가 끝났음을 아주 박력있게 선언하며, 현재의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성에 근거한 새로운 자가 착취의 사회가 도래하였음을 설파하고 있다. 

 '해야 한다', '해서는 안된다'가 지배하던 과거의 세계는 기술의 발전과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 등의 경험, 치열한 반성을 통한 자기 모순의 극복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는데 이르렀다. 저자는 이러한 성과 사회를 이른바 '할 수 있다'의 성과사회로 지칭하며, 이 안에서 개인은 늘 자기 자신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오직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만이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늘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사람은 결코 불안과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스스로가 만든 '완벽한 자신'이라는 우상을 향해, 결코 만족하는 법 없이, 그리고 현 상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목표 하나를 이루었어도 바로 다른 목표가 나타나 그것을 향해 돌진해 나가며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 의한 극단적인 자기 착취를 저지르게 되고, 스스로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바와 현실의 차이에서 절망과 괴로움에 지쳐 번아웃(소진) 되어 버리고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것이 바로 성과 사회의 개인의 전형적인 질병인 것이며, 이러한 성과 사회는 사실은 각 개인이 피해자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가해자인 피로사회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약간 추상적인 해결책을 제시 (No 라고 말하는 부정의 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를 지키고 즐기는 것으로 인한 무위의 피로의 회복, 활동적 삶의 과대평가 되어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사색적 게으름의 가치를 아는 것)을 하고 있으나, 나에게는 어느것도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의 현실 인식은 정말로 날카롭고 명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강과 근육질 몸에 대한 필요 이상의 숭배, 아무리 멋진 것을 이루어도 아무도 기뻐할 수 없는 현실 (늘 다음 먹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계속 강요되는 노력과 날로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은 상황은 정말이지 우울한 것이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러한 형벌과도 같은 삶의 형식이 실은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나 또한 어느새인가 완벽히 이를 받아 들이고, 주말에도 일을 하고, 늘 강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스스로를 감시하고 착취하는 주체는 늘 내 자신 뿐이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되어버린 삶이 내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였지만, 이것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시대적 문제라는 점에 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여기에서 빠져 나올 방안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Peter Thiel의 Zero to One의 메세지(링크)에 크게 공감한 것도, 사실은 그의 성공 방식이 성과주의적 착취를 벗어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의 방식은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하는 추상적인 철학적 선택이 아니라, 좀 더 밝고 스마트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더 큰 호감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처한 상황을 관조해 보는 것이다.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 이러한 관조와 사색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이 필요하고, 배짱이 필요하다. 그리고 종교도, 돈도, 건강도, 마약과 섹스와 같은 자극도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도 역시 필요하다. 

 희미하게나마 방향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내가 누군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쓸데없이 자기가 아닌 것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 그렇게 강요하지 않을 용기가 중요한 것 같다. 조금 독서의 방향과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덧글

  • 하얀 2015/11/18 10:14 # 삭제 답글

    휴브리스님 트윗타고 왔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피로사회의 문제 제기와 제로 투 원의 해답.
  • 빛에대하여 2015/11/19 00:24 #

    하얀님 안녕하세요. 덧글 감사합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려주세요!
  • 하늘여우 2015/11/18 19:44 # 답글

    제로 투 원을 읽어봐야겠군요.
  • 빛에대하여 2015/11/19 00:23 #

    꼭 읽어 보세요. 정말 재미있고 훌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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