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련 책읽기 기록


함께 공부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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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대하여 | 2017/12/31 22:46 | 중국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2)

명상록 by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천병희 옮김)

그리스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관련하여 로마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공부해야 하는 범위야 끝이 없겠지만,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건 로마의 '스토아 학파'였다.

어렸을 적엔 금욕주의의 대명사인 스토아 학파를 농담의 소재로 줄곧 써먹곤 했지만, 조금씩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진정한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는 다소의 금욕과 자제, 그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적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이 '명상록'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막연하게 그냥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책 이야기 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회창씨라면 아마 이 책을 진심으로 좋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학파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더 높은 수준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부질없는 욕정과 어리석음에 휘둘리며 충분히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다른사람이 만들어 놓은 허구적인 인생을 연기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오직 변하지 않을 한가지 진실, 곧 인생은 유한하며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짧은 인생을 최대한 성찰적이고 뜻깊게 살기를 요구한다. 더 나은 것, 더 사람다운 것을 향하여, 한 순간 한 순간을 진심으로 성찰하고 음미하는 삶의 자세가 스토아 학파가 추구하는 바이다.  

로마의 황제였던 저자는,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권력과 출중한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있었지만, 철저히 스토아 학파의 이상을 구현하는 삶을 산다. 욕망을 부풀리기보다, 주어진 것에 더욱 감사하고, 소박함 속에서 미(美)를 찾으며 아름다운 인간의 모범을 살아 나간다. 명상록은 그러한 저자의 삶에서 깨닫고 실천해 나간 내용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술하여 이 책을 남겼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금욕주의도 또 엘리트주의적인 오만함이 거슬리기도 하고,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나누고 열등한 것은 우월한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등 다소 귀족주의적인 견해도 보이지만, 그러한 점이 이 책의 가치를 훼손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점까지 포함하여 인간이 현실 속에서 더욱 고귀하고 인간 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욱 생생하게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아울러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서구의 합리주의와 성숙한 시민의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보다 그리스/로마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결국 우리가 지금 아는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종교가 유럽에 들어 온 후 그리스/로마의 철학적 전통의 영향을 받아 재해석되어 '서구화 된' 버전이라는 것이 아닐까. 서구의 정신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은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아닌 그리스/로마 철학 전통이 아닌가 싶다. 

확실히 스토아 학파의 철학은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회 지도층 및 귀족을 위한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것이다. 그러나 결국 철학을 필요로 하는 계층은 사회 지배층일 것이고, 철학은 그들에게 바른 지침을 제공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토아 철학은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측면 또한 가지고 있다. 차갑고 엄숙한 철학이며, 고귀함을 숭상하는 철학이다. 바로 그런 점이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살면서 무조건적인 엄숙함이나 형식주의,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고 매력 없게 만드는지 알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것을 실천해 나가는 진지한 마음 그 자체에는 계속 끌리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내 나름대로 착하게 살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또 종교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적절하게 오늘을 희생하고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현재의 판단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후회할 일인지를 알 수 있게 되겠지. 계속 고민도 되겠지만, 일단 오늘 하루를 스토익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 보아야 하겠다.


by 빛에대하여 | 2017/07/17 11:54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산다는 것에 대한 메모

산다는 것이 참 별거 아니다. 꿈을 가지고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 내는 것 결국 이 두 가지 뿐이다. 산다는 것에 능숙해 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죽을 날이 반드시 온다. 육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전한 무에서 시작한 우리는 다시 완전한 무로 돌아간다. 이 사이에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최대한 살아 내야 한다. 영혼의 관점에서는 어떠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으므로 일단 판단을 보류한다.

고대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늘 관심사가 높은 주제였다. 그에 관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책과 가르침이 남아있다. 나는 최근 그러한 지혜를 진지하게 배워 나가는 데 많은 관심이 생겼다. 누군가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일단은 독학으로나마 앞으로 나아가 볼 생각이다.

언제나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고 만다. 늘 솔직한 것이 중요하다. 안된다고 생각해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꿈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결국 이것이 산다는 것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by 빛에대하여 | 2017/07/07 03:18 | 일상의 기록 | 트랙백 | 덧글(0)

한국인의 발견 by 최정운

작년 겨울 (즉 2016년 12월말 ~ 2017년 1월) 에 직장 근처의 영풍문고에 들렸는데 이 책이 매우 많이 깔려 있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시대별로 대표적인 한국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쭉 한국인으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한 번도 스스로가 한국인인 것에 의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러나 최근 더 생생히 느끼는 세대간 / 이념간 갈등 양상을 보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낼만한 정체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한국인이란 어떤 사람들인지를 더 잘 알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윗세대들에 대해서 가지게 되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 또한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내가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이겨낸 그 분들, 한국을 발전시키고 이만큼 형태를 갖추어놓은 그 분들은 분명 대단하고, 터프하며,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답답하고, 편법과 거짓을 선호하며, 속물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도대체 한국인들이란 어떤 사람들이고 우리는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에 대하여 각종 현대사에 관한 책이나, 최근 읽었던 최현숙 님의 '할배의 탄생'과 같은 책을 읽으며 이해를 넓혀가려고 하던 와중에 만난 이 책은,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훌륭한 문학은 그것이 다루는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최정운 교수가 이 책에서 발췌한 문학작품을 통해 보여준 한국인들의 모습은 정말 생생하고 입체적이었다. 우리 문학이 이렇게 강하고 또 솔직했구나 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다시 느꼈다. 40년대의 식민지배와 독립,50년대의 참혹한 전쟁, 그리고 그 고통과 가난에서의 점진적 회복, 4.19이 5.16으로 대변되는 60년대의 혁명적 분위기와 그 좌절, 70년대의 독재와 산업화, 80년대의 투쟁적인 분위기, 90년대의 개인의 발견이라고 하는 거대한 한국 현대사의 흐름은, 문학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그 속의 문학적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훗날 돌이켜 보면, 2000년대는 어떻게 기억될까. 또 2010년대는? 1990년대만 해도 이미 현재와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년 전이다. 생각해 보면, 80년대와 90년대는 여러 모로 큰 차이가 있었지만, 90년대와 2000년대는 꽤 연속성이 있게 느껴진다. 2000년대와 2010년대는 그러나 또 확 달라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의 한국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무언가 달라지려고 하고, 선진국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 시대... 외형적 성장과 속도 보다는 시민적, 문화적 성숙을 의식하기 시작했던 그 때의 분위기가 특별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은? 물질적으로는 가장 풍요롭고 문화적으로도 압도적으로 세련되어졌지만,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러니가 넘치는 시대가 아닐까. 그리고 누군가는 문학으로, 또 영화로 오늘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문학 속의 주인공은, 작품 속에 설정된 나이와 상관 없이 늘 젊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로 문학 작품의 주인공은 깜짝 놀랄 만큼 젊은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러한 젊고 투명한 감수성만이 그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를 가장 투명하게 거울처럼 비추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뜻깊은 존재다. 그 작품을 일찍 그 당시에 읽었던 사람에게는 큰 위로와 공감을 주면서 그 시대를 살아갈 힘과 용기를 준다. 그리고 그 작품을 나중에 읽은 사람에게는 그 시대에서만 얻을 수 있었던 독특한 통찰과 경험을 고스란히 전해 주면서 현재만 살아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통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읽기란 늘 단순히 재미있을 뿐 아니라, 매우 뜻깊은 독서 체험인 듯 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훌륭한 소설을 찾기가 정말 힘들고, 설령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깊게 읽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소설은 다른 사람과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생생하고 강력한 논픽션 작품을 읽거나 자신의 사회적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와 세계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록 소설 읽기는 더 즐거워 지는 것 같다. 오늘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 가면서 조용한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소설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이를 나눌 사람들을 찾아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 삶은 깨어 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매력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by 빛에대하여 | 2017/07/07 03:06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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