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by 이인열

진실한 이야기의 힘이 담긴 위대한 소설이다. 나는 앞으로의 소설 문학은, 이런 이야기들이 주류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영상 매체의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진 세상에서 상상력만으로 쓴 관념적인 이야기는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 또한 모두가 바쁘고, 다양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확인되는 현재, 아직까지 소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결국 작가 개인의 깊은 경험과 철저한 취재에서 나오는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공유'와, '그 현실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힌트/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데 있다고 믿는다. 소설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즐기는 것으로 경쟁한다면 영화/웹툰/만화/애니메이션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소설이 그저 인간의 감정이나 풍경을 묘사하는 예술적 수단 혹은 문장의 아름다움을 다투는 예술적 수단으로만 쓰인다면, 이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힘을 너무도 제한적으고 좁게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시'나 '에세이'로 승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소설만이 전달할 수 있는 호흡이 긴 이야기와 디테일, 방대한 사유의 흐름과 복잡한 감정의 묘사가 있다. 나는 현대사회에서 소설은 이러한 소설만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효과적이고 예술적인 간접경험의 수단'이자,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얻은 배움의 전달을 위한 예술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이 소설이 생명력과 가치를 가지고, 독자에게 최대한의 즐거움과 함께 소설 읽기에 대한 보람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인열 작가의 이 소설은, 내가 현대 소설에 기대하는 위의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훌륭한 소설이다. 일단 이야기의 놀라운 사실성과 디테일, 그리고 진실함은 독자로 하여금 수사관이 되어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어떠한 경험인가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범인과 피해자, 그리고 수사관이 느끼는 감정과 고뇌가 어떤 것인가를 직접적으로 이해하게 해 준다. 이야기 자체는 투박하지만 끝까지 다음이 궁금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재미와 박력이 있다. 유력한 용의자를 두고 이 용의자가 진짜 범인인지가 밝혀질 때까지 소설은 끊임없이 독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주인공 수사팀장과 부하들이 펼치는 끈기있고 고생스러운 수사 과정 속에서 현장 수사관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럽게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멋진 팀워크와 주인공 수사팀장의 훌륭한 리더십으로 어려움을 이겨 나갈 때, 우리는 큰 용기와 위안을 얻는다. 흔히 많은 소설 팬들이 미국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극찬하는데, 나는 이 소설에서 한국식 하드보이드 추리문학의 가능성을 보았다. 당당하고 묵직한 중년 아저씨-, 씩씩한 한국 사나이의 매력이 정말 멋지게 표현되었다. 수사 팀장과 함께 일하는 부하 수사관들의 개성적인 캐릭터, 생생한 사투리와 말투, 믿음직스러움 또한 정말 빼어나게 그려졌다. 소설을 읽으며 조금은 더 강해지고, 지혜로워진 느낌이 들었다면, 이러한 인물의 매력을 흠뻑 느끼면서 이들 인물의 고민과 열정이 생생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매력과 힘, 그리고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매력과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 삶 속에서 결코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 속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긍심과 애정을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고 있지 않으며, 정말 많은 좋은 사람들의 노고 속에서 보호받고 또 함께 도와가며 살아 나간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진실하게 느꼈던 경험과 깨달음을 더 알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더 좋은 이야기와 더 멋진 깨달음을 이 세상에 보태고 또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by 빛에대하여 | 2018/08/15 19:36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댓글부대 by 장강명


또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다. 이제 순순히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장강명 작가의 팬이다. 벌써 네권째 그의 작품을 읽었고,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의 소설이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특별한건지 모르겠다. 분명히 정말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뻔하기도 한 작품이다. 작품으로서 멋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읽고 나면 '좋았다'라고 느끼고, 이렇게 후기를 남기고 싶어 지는지, 정말 궁금하다.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인지 무엇이 이 장강명 작가를 특별하게 만드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절묘한 균형감각에 감탄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여러 입장들 - 보수 / 진보, 남자 / 여자, 재벌 / 서민, 기성세대 / 신세대의 입장을 모두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건,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약자'라고 되어 있는 진보, 여성, 서민, 신세대의 입장이 아닌, '반대쪽'의 입장이 매우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이 나쁘게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설득력과 열정을 가진 무언가로 묘사되고 설명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나, 결코 그 의견이 옹호되지는 않는다. 다만 충분한 묘사와 설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될 뿐이다. 이 점이 아주 절묘하게 느껴졌다. 인물과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 주는 것이 매우 좋았다. 작가의 이런 쿨한 태도, 그리고 적절한 유머감각과 지적인 관점이 어려운 주제를 잘 풀어나가는 무기/비법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2016년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한창 진행되고, 모두가 촛불운동에 동참하고 있을 때, 지하철에서 소위 '태극기 부대'의 일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때 보던 것 같은 빨간 티셔츠에 모자, 티셔츠 모두 태극기를 장식하고 있었다. 선글라스와 짙은 화장, 하얀 바지가 인상적이었다. 그 분은 도대체 왜 소수파를 자처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할 수만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당연히도 그럴 수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전달해 줄 수는 없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댓글부대'처럼 재미있고 쿨하게...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세상이 정말 넓고, 이 안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또 여전히 무섭고 위험한 사람도 많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기에 더욱 더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욕도 다시 한 번 내 볼 수 있었다. 다시 앞으로 나가 보아야겠다. 내가 만날 세상이 얼마나 험하든...

by 빛에대하여 | 2018/08/11 09:01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호모도미난스 by 장강명


재미있다. 정말 간만에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소설책을 만났다.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꽉찬 재미가 있었다. 어릴 적 만화방에서 빌려 봤던 일본 만화책에서 느꼈던 재미를 오랜만에 맛봤다.

남의 정신을 조종해서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현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약자의 입장에서 짓눌리는 일상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상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나아가 항상 자신의 의지를 마음껏 관철시키는 강자와 항상 당하고 지배받기만 하는 약자가 단순히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정말 어떠한 '능력'의 유무의 차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과 보유하지 못한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고, 능력의 보유자는 예외없이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능력은 일종의 돌연변이처럼 발생하여, 그 능력을 가진 자와 평범한 인간이 확연히 구분된다면?

이 소설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 흡인력있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다양한 캐릭터와 빠르고 경쾌한 전개에 아주 쉽게 작가의 세계관에 몰입이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순간에도 생각이 나고, 계속 끝이 궁금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다. 나 또한 이렇게 스토리 만으로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 속의 나는 항상 남과의 관계에서 내 의견을 포기하는 쪽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를 먹으며, 또 주변 사람에게 배우면서 조금씩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내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경우에서는 쉽게 말문이 막히고 내 의견을 굽히고 타협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런 부분이었다. 가뜩이나 성격상 강하게 자기 주장을 잘 못하는데, 말발까지 딸려서 그냥 밀려 버리고 마는 경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에 제일 중요한 건 자기의 의사와 이익을 분명하고 또 효과적으로 주장하는 능력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워 나가는 것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내가 가장 힘들게 해 나갔던 일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늘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느꼈던 것은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늘 타인의 희생을 적든 크든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평범하고 약한 우리들은 결국,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자신을 배려해 주는 사람에게만 당당하며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만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며 여기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묘한 죄책감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 한 것 처럼, 호모 도미난스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상대방이 만만하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많이 사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좋은 컨텐트를 소비했을 때 드는 뿌듯한 만족감과 뭔가 치유되는 느낌이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오롯이 들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한 권이다.

by 빛에대하여 | 2018/08/03 22:06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by 천명관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 '고래'는 세 권이나 있었다. 한 권을 중고 서점에 팔았기에 지금은 두 권이지만.... 약 1년전 쯤 친척분으로부터 천명관 작가의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추천 받아 힘들고 지쳤던 주말 저녁 지친 마음을 달래며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인상깊게 남지는 않았기에 그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하지 않았다. 단편 소설들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역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국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언제나 픽션으로 도망치는 내 습관 탓이다. 영어나 일본어 소설보다도, 역시 모국어인 한국어로 씌여진 한국 소설이 이럴 때엔 제격이다. 물론 번역본을 손에 잡아도 좋겠지만, 여전히 그러긴 싫다. 적어도 영어와 일본어에 대해서는 아직 원어로 읽는다는 원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천명관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소설이다. 예전 당산역의 한 서점 매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이제야 읽어 보게 되었다. 고래와 같은 명작의 기운은 없었지만, 그래도 주말 밤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고, 일요일 아침 일찍눈 뜬 직후의 조용한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는 즐거운 소설이었다.

인천의 뒷골목 건달들과 그 주변 양아치들, 그리고 지방의 조폭들이 총 출동하는 이 소설은 한 편의 재미있는 한국 영화를 보는 기분을 주었다. 어떤 면에서는 장강명의 소설과도 비슷했다. 당장 영화화 되어도 좋을 신나는 소재와 그 이야기를 꼬임 없이 절묘하게 풀어가는 솜씨가 좋았다. 속도감있는 재미 (단, 유치해지지 않는데 매우 주의한 것 같다)에 치중하고, 깊은 내용은 일부러 배제하려는 것이 요즘 시대의 소설 특징인가 싶었다. 아마 영화화를 전제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이 작품에서는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야기 자체를 오밀 조밀 절묘하게 구성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것, -즉 소위 '구라'로서의 최고급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 일까? 문장이나 캐릭터는 정말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컴퓨터로 쉽게 쉽게 쓴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아닌게 아니라 좀 찾아보니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를 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아마 분명히 연재의 방식이 이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천명관의 '고래'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번 작품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진부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작가들도 예술가(즉, 아티스트)라기보다는 더 큰 의미에서 '크리에이터'를 지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작에 방점을 두는 크리에이터는 그 안에 복잡하고 미묘하고 의도적인 예술을 집어 넣는 데에 더 이상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찌기 일본의 대중소설에서 나타난 이 경향이 한국 문단에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예술적인 소설을 쓰려고 하는 작가들이야 많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해도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독자를 확보하기도 무척 어려울 것이다. 

다른 네티즌 리뷰를 살펴 보아도, 이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솔직히 그저 고급스러운 이야기 = 구라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많은 듯 하다. 블로그를 잠시 쉬었을 때 읽어서 기록을 남기지 못했던 명작 '고래'와 달리, 그리고 이 책을 잡기 전에 읽었지만 내 기준에는 탈락하여 리뷰가 남지 못한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달리,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리뷰가 남게 되는 것이 참 재미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이렇게 우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있으면 같은 작가의 '고령화가족'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최근에는 영화화 된 소설들을 중점적으로 찾아 읽고 있다. 언젠가 나 또한 영화화 되는 작품을 하나 써 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픽션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좋은 이야기 속으로 잠시 나갔다 오는 것 만으로도 다시 힘을 얻고 새롭게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이 그래서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치유의 힘이 오래 남는 작품을 쓰고 싶다. 좋은 이야기의 영향이 오래 미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참고가 되는 작가 인터뷰>

by 빛에대하여 | 2018/07/15 18:28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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