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련 책읽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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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대하여 | 2017/12/31 22:46 | 중국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박찬기 옮김)


괴테가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참 특별한 작품이다. 착하고 열정적인 마음을 가졌고, 매우 지적이지만 순수하고 낭만적인 영혼을 가진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해서는 안될 유부녀 샤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겪는 격정과 절망을 애절한 편지 형식의 글로 묶은 소설이다. 호메로스를 즐겨 읽고 신분과 재산보다는 인간 그 자체를 보려고 하는 주인공 베르테르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스스로가 세상에 의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이다. 그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도와주고자 여러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일자리를 주선하여 주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모두 덧없고 불만족스럽기만 할 뿐이다. 그는 평민은 아니기에 소박한 평민들과도 거리를 두어야 하고, 하급귀족이기에 최상층의 사람들과도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그에게 현실은 끝없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를 한없이 외롭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요양을 위해 훌쩍 떠나온 곳에서 베르테르는 샤로테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첫눈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이미 알베르트라고 하는 약혼자와 약혼한 사이임을 알고 다시 자신의 운명이 또 자신을 장난에 빠트렸음에 괴로워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달리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건에서는 상당히 쟁취하기 어렵거나, 또는 그 쟁취가 남들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는 어떠한 대상을 진심으로 원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깔끔히 포기하기 보다는 그 대상에 대해 더욱 집착하고, 그 대상을 더 열렬히 사랑하며,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상 자체와, 그 대상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한없이 아름답고 열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이들을 미화하는 경험 또한 하게 된다. 즉,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특별하므로 그 대상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라는 판단을 근거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상이 비록 세상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용감하게 욕망하고 달려들곤 하는 것이다.

나는 괴테가 이 소설에서 묘사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가 이 사랑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절제, 노력 모두 숭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가 키워나간 샤로테에 대한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감정은 그 자체로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애절한 것이고 무척 깊은 아름다움을 갖춘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결국은 좌절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한 베르테르가 자기 파멸을 선택하였을 때, 그 아쉬움과 절망감은 정말 가슴 깊은 곳을 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일본의 할복자살에 대한 숭배와 특유의 미의식과도 묘하게 통하는 구석이 있는 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과연 이러한 자결(自決)은 정말로 숭고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베르테르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우리의 사랑은 소맥 폭탄주 또는 와인 또는 사케 또는 위스키 등등 알코올에 절고, 가벼운 카톡 대화로 상징되는 '썸'의 시간이 대부분이며, 결국엔 조건을 재고 외모를 따지는 구질구질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본질만을 본다면 결국 몸과 마음이 순수하게 끌리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때로 그 상대방은 자신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만나거나 원해서는 안되는 사람인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그냥 가벼운 관계로 끝나지만, 이것이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렇게 문제가 진지해지기 시작할 때, 베르테르 처럼 한쪽이 지나치게 큰 사랑을 가져버리고, 이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른 한 쪽은 그 열정에 끌려가기는 하지만, 또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기는 하지만 선을 넘을 생각이 없을 때 바로 이 소설의 배경과 비슷한 상황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가 베르테르의 입장에 서 있든, 샤로테의 입장에 서 있든 선택을 해야 한다. 소설과 달리 우리 삶은 계속 흘러가며, 미래에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보통은 베르테르 입장의 사람은 한없는 슬픔과 절망에 빠지고, 샤로테 입장에 있는 사람은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그때 그때 다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읽으며 베르테르와 샤로테, 그리고 괴테가 소설 속에서 제시하는 다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캐릭터들'을 천천히 음미하면 분명 상대방을 더욱 더 배려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 해결책을 찾는건 그래도 여전히 무척 어렵겠지만.... 애초에 이러한 상황이 감당이 안되면, 아예 이런 상황으로 발전시킬 여지를 차단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샤로테가 너무 베르테르에게 소위 '여지'를 많이 주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면 아예 냉정하게 끊어버리는 게 최선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분명 '인간적인 가치'가 큰 의미를 가졌던 지난 시대까지는 큰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더욱 심화되고, 인간적인 가치가 하나의 '오류의 원인'이 되어 버리는 시대에서는 과연 어떻게 읽혀지게 될까 궁금하다. 쇼팽과 베토벤의 음악과 같이 극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로서 남게 될 것인지, 아니면 문학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결국 의미 없는 낡은 과거 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여 사라져 버릴지 (개인적으로 추상성이 높은 음악이나 미술이 더욱 보편적이고 수명이 긴 예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다), 정말 궁금하다. 짝사랑의 달인이자 질풍노도적 사랑의 감정을 아름답게 여기던 나 조차, 나이를 먹고 변화하는 현실을 경험하며 많이 변해 버려서 이제 이런 소설이나 영화를 보아도 이해는 가지만 예전처럼 몰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낸 작품은 정말 늘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무려 1774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정조가 조선을 다스리던 시기이다. 이때 이미 독일에서는 이러한 사랑의 감정을 적나라하고 아름답게 묘사해 내고, '자살'이라는 주제를 윤리적인 관점,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인간적 관점에서 다룬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귀여운 4살짜리 아이가 내가 읽던 책에 자기가 가지고 놀던 공주 스티커를 표지에 붙였다. 나중에 이 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이 책이 계속 생명력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런지, 그때는 어떤 식으로 가치를 가질 것인지 궁금하고 또 기대도 된다.


by 빛에대하여 | 2017/09/17 09:29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한국이 싫어서 by 장강명


의외로 메세지가 좋은 소설.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조건 똑같이 살면서 아무런 의미 없는 불평과 속물주의가 판치는 한국을 떠밀리듯 떠나 호주에서 정착하게 된 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좋은 나라에 살면서 그 편안함과 부유함, 그리고 특유의 저질스러움과 천박함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다. 모두가 사실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모른 채, 남들과 똑같이 맞춰 살려고 하고, 소비수준과 생활 방식도 똑같이 가져가려고 하며, 심지어 불만과 분노마저도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서 한다. 그리고 쓸데없는 서열의식과 무기력함으로 남들을 스스로의 기준이 아닌 엉뚱한 '한국사회적 기준'으로 마음대로 판단하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생각과 신념이 아닌 남이 쥐어준 판단 잣대와 취향으로 스스로를 심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데 적극적인 불만은 없었지만, 최소한 심하게 지쳐버리고 가벼운 염증을 겪고 있었다. 다소 충동적으로 떠나게 된 호주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적응하고 살아가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의 중독적이고 압박적인 분위기에서 해방되면서 한국사회와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이고 주체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결코 무조건 해외를 찬미하고 조국을 부정하는 소위 '헬조선론자'는 결코 아니다. 주인공 계나는 다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아간 다른 사회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계나는 자기가 한국을 떠나 정착하게 된 호주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호주에서 잘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살 때처럼 열심히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현실적으로 세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마음가짐이 이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마음대로 지레 짐작하기보다는 스스로 한 번 행동해 보고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로 받아들이고 또 그 결과에 따라 씩씩하게 대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 - 사실 우리 젊은 층은 이러한 마음을 상실했기에 멀쩡한 우리나라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P.S. 재미있고 뜻깊은 소설에 비해 이 책의 뒤에 부록으로 붙은 문학평론가 '허희'라는 사람의 글은 정말 한심했다. 한국사회를 거시적으로 보면 거대한 축사이고, 그 축사를 미시적으로 보면 정글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좋았고, 그 축사를 적극적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로서 계나의 이야기를 읽어 낸 것은 훌륭했다. 그러나 계나의 경험과 현실주의적 태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나의 현실주의를 이해타산적 태도로 비판하면서, 강자와 약자 모두 '연대'해서 모두를 억압하는 '우리'를 부숴버리고, 모두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존중할 수 있어야 계나가 (그리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히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이런 나이브한 평론을 자신의 소설 단행본 뒤에 추가하도록 허락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망쳐놓는 평론이 실리는 것은 정말 처음 본다. 물론 내가 이 소설의 주인공 계나에 너무 몰입하고 내 감정을 너무 심하게 투영하여 내가 이 소설을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여튼 간만에 아주 좋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를 알게 되서 기쁘다. 천천히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겠다.

by 빛에대하여 | 2017/09/17 02:36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지배받는 지배자 by 김종영


이책은 내가 종종 서울대학교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들렸던 '그날이오면'이라고 하는 좌파 서점에서 지난 2월 쯤 산 책이다. 그러나 얼마전 다시 찾아가 보니 이제 원래 있던 자리에는 그 서점이 없어졌고, 녹두거리 건너편 옛날 신림2동쪽으로 밀려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서점의 상태는 이제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쇠락해 있었다. 정말로 이제 한 시대가 끝나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읽은 '지배받는 지배자'에서도 내가 '그날이오면' 서점을 보면서 느꼈던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한국 대학의 몰락'이라는 씁쓸함이었다. 이 책은 한국인 도미 유학생들을 20여년간 추적 조사하여 그들이 한국과 미국의 학계와 학계 밖의 세계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형성하고 살아 나갔는지를 보고하는 한편, 특히 한국과 미국의 학계 상황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안에서 한국인 도미 유학생들이 어떠한 지위와 입지를 구축해 나가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에 의하면 한국인 도미 유학생들은 미국 유학파 엘리트가 되어 한국의 학계에서 압도적인 우위의 엘리트 계층을 이미 형성하고 있고, 학계 외에서도 MBA 및 실용학문 학위 소지자를 중심으로 '영어'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장점으로 가지는 엘리트 계층으로서의 지위를 다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의 모습과, 미국에서 정착한 한국인 유학생들의 '엘리트이지만 이방인으로서 소외 받는'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면서 도미 유학생들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해서 생생한 사회학적 보고를 제시한다. 즉,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Cosmopolitan Elite이자 지적 헤게모니를 확보한 지배자의 위치를 점하지만, 결국 미국이라는 원조 권위에 필연적으로 예속되기 쉽고 미국 사회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상대적으로 열위에 처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상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한국에서는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엘리트', 미국에서는 '(착함, 성실함, 겸손함 이라는 아비투스를 가져야만 하는)트랜스내셔널 이방인 엘리트'가 되는 존재라고 설명하며, 이들의 현실과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한국의 경희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한국의 학문이 자립하지 못하고 수준 높은 연구 능력을 상실해 가는 모습과, 여전히 실력보다 학벌 등 멤버십이나 '성격'과 같은 요소를 따지며 학계에 정착할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을 가하는 것도 매우 통렬했다. 그러나 또한 이공계를 중심으로 국내 박사의 실력 수준도 점차 향상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또 한국에서 학문 연구 또한 전반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보이며 희망을 제시하는 데에서는 다소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연구 대상이었던 도미 유학생들이 15년의 추적 조사 결과 대부분 한국과 미국에서 그럭저럭 좋은 커리어를 구축해 나가며 사회의 엘리트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고, 저자가 교육의 힘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대목은 이 책의 저자가 메인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니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내 경험과 또 이 책의 성실한 보고를 읽으면서 앞으로의 한국 대학은 결국 '그날이 오면' 서점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겠구나하는 초조함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종영 교수 또한 미국 대학 (UIUC)의 Ph.D이고, 한국의 유수 대학(경희대)에서 정교수직을 확보한 사람이니 사실은 사회의 거대한 변화에서 안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다르다. 한국 대학의 학사학위가 전부인 사람, 미국 유학은 커녕 영어와 서구사회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이 책에 묘사된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은 아직 사회의 지배층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점점 50대 60대가 되어 가면서 우리 사회의 주요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할 것이고, 비단 학계 뿐만 아니라 기존 한국 명문 대학 출신 및 고시출신들이 독점했던 정/관/재계의 핵심 지위를 차지하는 유학파 엘리트의 수는 점차 늘어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퇴행적 분위기와 지적 정체를 생각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과거에는 그나마 여러가지 구차한 변명으로 토종 엘리트의 가치를 변호할 수 있었지만, 이제 솔직히 모두가 입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서구, 특히 미국의 엘리트교육이 얼마나 우월한지,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우리보다 앞서는지를 이젠 모두가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느낄 수 있는 시대이다. 과연 이러한 시대에서 서울대를 좋은 성적으로 입학해서, 서울대 로스쿨에 갈 정도로 좋은 학점을 유지한다든지, 고시에 붙을 정도로 철저히 법과목과 기초 경제학 및 행정학 시험과목을 한국어로만 미친듯이 암기하고 하는 것이 어떤 경쟁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꼭 유학을 가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유학파 못지 않게 안목을 넓혀야 한다. 유학파들을 단순히 미국 권위에 기댄 '영어만 잘하는' 바보로 믿는다든지, 서울대 인풋이 미국 최고 명문 대학 인풋과 똑같거나 그 이상 좋다고 주장한다든지 하는 태도는 이제 버려야 한다. 아니, 버리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그러한 생각은 폐기될 때가 멀지 않았다. 좀 더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외국의 정보와 뉴스를 끊임없이 접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나만큼 타인도 훌륭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성실한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일 때, 결국 해외 권위에만 기대는 바보나 서구 경험을 통한 문화자본만 믿고 군림하려 드는 얼뜨기들을 실력으로 도태시킬 수 있을것이고, 유학파와 국내파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 나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국내파에게 심하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어려움에 빠진 '그날이오면' 서점처럼,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떠한 명분을 가져와서 항변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패한다. 구한말 유생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그래도 그나마 이 작은 한국에서도 세계를 실시간으로 접하게 해 주는 기술의 발전이 있었음에 감사한다. 큰 물을 적극적으로 의식하며, 계속 열심히 살아 나가고 싶다.

by 빛에대하여 | 2017/09/17 01:51 | 기억에 남은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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